AI가 교안 작성과 데이터 분석을 대신하는 시대, 교육담당자에게 남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과업 기반 자동화 이론과 HR 애널리틱스 성숙도 모델로 짚어보는 HRD의 미래 역할 5가지를 시리즈 전체를 돌아보며 정리했습니다.

"AI가 강의안도 써주고, 퀴즈도 만들고, 설문 데이터까지 분석해주는데 교육담당자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죠?" 17번부터 19번 글에 걸쳐 생성형 AI 활용법을 다루는 동안 이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을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두려움이 섞여 있다. 하나는 "내가 하던 업무가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내 존재 자체가 조직에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논의는 늘 근거 없는 낙관이나 막연한 불안으로 흘러간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다룬 19개의 글은 사실 이 질문에 정확히 답하기 위한 재료들이었다. 이 마지막 글에서는 어떤 업무가 사라지고 어떤 업무가 남는지를 검증 가능한 이론적 틀로 짚어보고, 앞으로 HRD 담당자에게 요구될 역할과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한다.
1. "직업이 사라지는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기술 변화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노동경제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직업이 사라지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부정확하다고 지적해왔다. 실제로 사라지거나 살아남는 것은 직업(Job) 단위가 아니라 그 직업을 구성하는 개별 과업(Task) 단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아우터(David Autor)와 동료들이 제시한 과업 기반 프레임워크는 업무를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 일상적(Routine) 과업: 명확한 규칙으로 처리 가능한 반복적 업무. 자동화에 가장 취약하다.
- 비일상적·인지(Non-routine Cognitive) 과업: 상황마다 원인과 맥락을 새롭게 판단해야 하는 업무.
- 비일상적·관계(Non-routine Interpersonal) 과업: 신뢰 형성, 설득, 정서적 교감이 중심인 업무.
이 틀을 적용하면 "HRD 담당자가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은 "HRD 담당자가 수행하는 수십 개의 과업 중 어느 것이 일상적이고 어느 것이 비일상적인가"로 바뀐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1~19번 글은 이미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2. 지금까지 다룬 과업을 세 갈래로 재분류하기
15번 글의 자동화 우선순위 매트릭스와 17번 글의 AI 활용 적합성 매트릭스를 시리즈 전체로 확장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과업 성격 | 시리즈 내 구체적 사례 | AI·자동화와의 관계 |
|---|---|---|
| 일상적 과업 | 15번의 명단관리·수료증 발급, 4번의 설문 집계, 17번의 퀴즈 문항 초안, 19번의 교안 뼈대 생성 | 자동화·AI로 대부분 대체 |
| 비일상적·인지 과업 | 2번의 요구조사(진짜 원인 판별), 13번의 KPI 왜곡 감지, 14번의 비용 구조 분해, 5번의 만족도 함정 해석 | AI가 보조하지만 최종 판단은 사람 |
| 비일상적·관계 과업 | 12번의 리더십 코칭(표방이론·사용이론의 간극 탐색), 10번의 신입사원 멘토링, 18번의 조직 내 보안 원칙 합의 | AI로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 |
이 표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명확하다. 사라지는 것은 'HRD 담당자'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 안에 섞여 있던 일상적 과업들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지면을 들여 다룬 영역은 정확히 두 번째와 세 번째 갈래, 즉 요구조사에서 진짜 원인을 판별하는 일과 리더의 숨은 전제를 다루는 일이었다.
3. 데이터 활용의 진화: 7번 글의 확장판
경영학·HR 애널리틱스 분야에서 조직의 데이터 활용 수준을 설명할 때 흔히 사용하는 4단계 성숙도 모델을 HRD 영역에 적용하면, 7번 글에서 다룬 데이터 기반 HRD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가늠할 수 있다.
1단계 기술적 분석(Descriptive) : "무슨 일이 있었는가" - 이수율, 만족도 평균 (1번, 4번 글) ↓ 2단계 진단적 분석(Diagnostic) : "왜 그런 일이 있었는가" - 만족도 함정, KPI 왜곡 원인 (5번, 13번 글) ↓ 3단계 예측적 분석(Predictive) :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 - 이탈 위험군 예측, 교육 수요 예측 ↓ 4단계 처방적 분석(Prescriptive):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개인별 맞춤 학습경로 추천
지금까지 이 시리즈가 주로 다룬 영역은 1
2단계였다. 3
4단계는 대량의 데이터와 예측 모델이 필요해 모든 조직에 보편화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방향성만큼은 분명하다. AI와 자동화 도구가 1
2단계 작업의 상당 부분을 처리해줄수록, 담당자는 3
4단계, 즉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역할로 이동하게 된다.
4. 현장에서 함께 논의되는 3가지 변화 흐름
성숙도 모델과 별개로, 여러 산업 현장에서 함께 논의되고 있는 흐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아래 흐름들은 조직마다 도입 속도가 크게 다르므로, "이미 보편화된 사실"이 아니라 "여러 조직이 시도하고 있는 방향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 개인화된 학습(Adaptive Learning)으로의 이동: 모든 학습자에게 동일한 커리큘럼을 적용하기보다, 9번 글에서 다룬 KSA 격차를 기준으로 개인별 부족 영역만 제공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 업무 흐름 속의 학습(Learning in the Flow of Work): 6번 글에서 다룬 학습전이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하루 종일 진행되는 집체교육보다 업무 중 필요한 순간에 짧게 학습하는 방식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
-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으로의 고도화: 7번 글에서 강조한 것처럼, 직관이나 목소리 큰 부서장의 요구보다 성과 격차 데이터를 근거로 교육을 기획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5. 앞으로 부상하는 5가지 역할
과업이 재배치되는 흐름 속에서 HRD 담당자의 역할은 아래 5가지 방향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① 문제 해결 컨설턴트(Performance Consultant): 2번 글에서 다룬 요구조사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현업의 요청이 지식·기술 부족(교육 영역)인지 프로세스·시스템 결함(비교육 영역)인지를 감별하는 역할이다. "교육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역량의 일부다.
② 학습경험 설계자(Learning Experience Designer): 3번 글의 ADDIE가 콘텐츠 개발 절차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10번 글에서 다룬 학습 여정처럼 콘텐츠 하나가 아니라 입과부터 현업 적용까지 전체 경험을 설계하는 역할이 중요해진다.
③ 데이터 해석가(HR Data Interpreter): 13번·14번 글에서 다룬 KPI·비용 구조 분해 능력을 바탕으로, AI가 만들어낸 숫자가 조직에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고 경영진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④ 관계 중심 퍼실리테이터·코치: 12번 글에서 다룬 표방이론과 사용이론의 간극을 다루는 능력, 즉 사람의 저항과 방어기제를 다루는 역량이다. 이 영역은 세 갈래 과업 중 AI로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비일상적·관계 과업에 해당한다.
⑤ AI 거버넌스 담당자: 18번 글의 정보보안 원칙과 19번 글의 검수 프로세스를 개인이 아니라 부서 전체의 표준으로 관리하는 역할이다. AI를 잘 쓰는 개인 역량을 넘어, 팀이 안전하고 일관되게 AI를 활용하도록 기준을 세우는 역할이 새로운 전문성으로 부상하고 있다.
6. 반드시 함께 짚어야 할 균형적 시각
이 흐름을 낙관적으로만 서술하면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소한 세 가지는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첫째, 일상적 과업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5번 글에서 확인했듯, 규칙형 업무는 상당 부분 자동화되지만 예외 상황 처리나 시스템 오류 대응처럼 여전히 사람이 필요한 영역이 남는다.
둘째, 특정 지식이나 도구에 대한 숙련도가 예전보다 빠르게 낡아지는 경향이 여러 산업 논의에서 지적되고 있다. 다만 "몇 년마다"와 같은 구체적 수치는 산업과 분야에 따라 편차가 커, 이 시리즈가 지켜온 원칙에 따라 근거 없는 특정 숫자로 일반화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는 담당자 본인의 학습 주기를 정기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셋째, 조직마다 데이터 성숙도와 AI 도입 속도가 크게 다르다. 4단계 성숙도 모델의 3~4단계에 이미 도달한 조직도 있지만, 여전히 1단계에 머물러 있는 조직도 많다. 이 글의 전망을 자신이 속한 조직의 현재 상황과 무관하게 그대로 적용하려 하면 오히려 비현실적인 계획이 될 수 있다.
7. 가상 사례: 업무 비중이 재배치되는 방향성 (예시)
아래는 실제 조사 결과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방향성을 보여주기 위한 가상의 예시다. 가상의 HR 컨설팅기업 (주)이든컨설팅이 자사 교육팀의 업무 비중을 AI·자동화 도입 전후로 재구성했다고 가정해보자.
| 업무 영역 | 도입 전 비중 | 도입 후 비중(예시) | 증감 |
|---|---|---|---|
| 반복 행정(명단관리, 수료증 발급 등) | 35% | 10% | -25%p |
| 콘텐츠 초안 작성 | 25% | 10% | -15%p |
| 요구조사·현업 진단 | 15% | 25% | +10%p |
| 코칭·현업적용 지원 | 10% | 25% | +15%p |
| 데이터 해석·경영 보고 | 10% | 20% | +10%p |
| AI 거버넌스 관리 | 5% | 10% | +5%p |
| 합계 | 100% | 100% | - |
이 표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숫자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일상적 과업에 해당하는 반복행정·콘텐츠 작성의 비중 합은 60%에서 20%로 40%p 줄어드는 반면, 비일상적 과업에 해당하는 진단·코칭·데이터해석·거버넌스의 비중 합은 40%에서 80%로 정확히 40%p 늘어난다. 총 업무량(100%)은 변하지 않지만, 담당자가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부가가치 업무에서 높은 부가가치 업무로 이동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수치는 실제 조사 결과가 아니라 방향성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이므로, 특정 숫자 자체보다 비중이 이동하는 방향에 주목해서 읽어야 한다.
8.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는 4가지
거대한 전망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으려면, 이 시리즈에서 이미 다룬 개념들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 2번 글의 요구조사 습관: "이게 정말 교육으로 해결할 문제인가"를 매번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은 어떤 도구가 등장해도 대체되지 않는 핵심 역량이다.
- 13번·14번 글의 데이터 해석력: 숫자를 만들어내는 일은 도구에 맡기고,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고 설명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 12번 글의 코칭·대인관계 역량: 표방이론과 사용이론의 간극을 다루는 능력, 즉 사람의 저항과 동기를 다루는 역량은 가장 오래 남을 자산이다.
- 17~19번 글의 AI 활용·검증 습관: AI를 두려워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초안 생성자와 최종 판단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사용하는 습관을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것이다.
9. 실무 적용 체크리스트
- 내 업무 목록을 일상적 과업과 비일상적 과업(인지·관계)으로 나누어본 적이 있는가
- 현업의 교육 요청을 받았을 때 곧바로 커리큘럼을 짜기보다 교육 외 원인(시스템·프로세스)을 먼저 점검하는가
- 우리 조직의 데이터 활용 수준이 4단계 성숙도 모델 중 어디에 있는지 점검했는가
- 요구조사·KPI 해석·코칭처럼 비일상적 과업에 쓸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고 있는가
- 새로운 도구나 개념을 정기적으로 학습하는 주기를 스스로 마련해두었는가
- AI 활용에 있어 초안 생성자와 최종 판단자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는가
10. 연재를 마치며
이 시리즈는 1번 글에서 "교육을 많이 하는 것과 교육이 효과를 내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요구조사·설계·평가·데이터·비용·업무개선·AI 활용까지 20개의 글을 통해 그 질문에 답을 채워왔다. 도구는 칠판에서 유인물로, 유인물에서 이러닝으로, 이제는 생성형 AI로 끊임없이 진화해왔지만, 8번 글에서 정의했던 기업교육의 본질, 즉 "사람을 변화시켜 조직이 마주한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대로다. AI와 자동화가 대체하는 것은 이 여정에서 다룬 일상적 과업들이며, 오히려 그 덕분에 요구조사에서 진짜 원인을 판별하고, KPI 왜곡을 감지하고, 리더의 숨은 전제를 다루는 비일상적 과업의 가치는 더 선명해진다. 결국 기업교육의 미래에서 HRD 담당자에게 남는 일은, 처음 1번 글에서 던졌던 바로 그 질문, "이 교육이 조직에 정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가"를 끝까지 놓지 않고 답을 찾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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